안녕하세요. 십 대의 블로거 작은 고래입니다.
이번에 쓸 글은 전에 적은 윤동주 시인의 삶을 더 깊이 알아보는 글입니다.
저번 글은 연희전문학교까지의 삶을 알아보았습니다.
-대학교
1942년 3월 윤동주는 일본으로 넘어가 도쿄 '릿쿄 대학교'의 영문과에 입학을 했다가 10월 교토 '도시샤 대학교'의 영문과로 편입을 합니다. +도시샤 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던 시인 정지용 님이 다녔다고 합니다.
1941년 말에 '히라누마'(平沼)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도 하게 된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의 뜻을 둔 세월을 위하여 성씨를 개명합니다.
창씨개명에는 본인의 뜻은 전혀 없었고 일제의 탄압과 세월의 단계라 생각하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창씨개명의 고통을 담은 시 '참회록'을 적었고 이런 사실은 해방 직후에 바로 알려지지 않고 1990년에 알려집니다.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
도시샤 대학에 잘 다니던 중에 그는 불령선인(일제시대에 일본에 말을 안 따르는 한국인)으로 찍히게 되고 일본 경찰에 감시를 당하게 됩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는 중에 사상범으로 몰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됩니다.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당합니다.
1944년 3월 31일, 재판에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가 심독 하며 일본과 조선의 차별에 원망이 심하고, 독립의 야망이 망동하다"라고 적혀있으며 송몽규와 치안유지법 5조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로 이송된다.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를 하였다. 시신이 화장되고 가족에게 돌아가서 그해 3월에 지린성 룽징시에 묻힌다. 죽을 때의 나이는 27년뿐이었다. 그의 비석은 할아버지의 것으로 짧은 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윤동주 시인의 짧지만 긴 것같은 삶을 보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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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3.1절이니 유관순 열사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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